홀로 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6
— 11/06/16
땅끝 마을 Whittier, Portage Pass Trail
하늘에서 부터 먼저 내리는 가을은 알래스카에서도 마찬가지 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곳은 하늘과 땅 모두 일시에 덮쳐버리는 듯. 삽시간에 산하를 진한 금색으로 물들여 버립니다. Matanuska 빙하를 바라볼수 있도록 큰 창을 내놓은 한 로지의 카페에 잠시 들러 따스함이 이제는 정겨워진 한종지의 커피를 마시며 쉬어 갑니다. 뒤 뜰에는 칼리부가 큰 왕관을 쓰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지금 당장에라도 우리에게 흘러 닥칠 것 같은 빙하가 목전에 있습니다. 가늘게 내리는 비에 하릴없이 젖고 있는 계곡의 산하는 찻잔의 온기와 체내로 흘러 들어간 한잔 술이 녹아서인지 아늑하고 평화스럽기만 합니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자유.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자연과 나와의 평온한 이 관계. 어둠은 소리없이 산그림자를 데리고 몰려옵니다. 인색한 불빛을 발하는 실내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산촌의 밤은 술과 함께 깊어갑니다.
매캐한 장작 태우는 내음에 잠을 깨는 새벽을 맞이하고 봇짐을 챙기는 나그네의 유랑은 다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앵커리지 북부인 디날리와 글랜 하이웨이 지역을 돌았으니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와 재정비를 해서 남부 쪽인 Whittier와 Seward 그리고 fjord 국립공원을 돌아 행할 8자형의 여정이 이어집니다. 먼저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고 피시 마켙에도 들러 와일드 레드 살몬도 작은 놈으로 한마리 챙깁니다. 싱싱한 횟감으로 골라 오늘 저녁은 위티어라는 어촌 마을에서 피요르드 같은 해협을 바라보며 달과 함께 겸작을 하려 합니다. 날이 궂어 달도 별도 함께 하지 못한다면 푸른 달 만큼이나 환하게 밝은 빙하를 벗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려합니다. 앵커리지에서 이곳 까지는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만 달리는 해안 길 Seward highway는 자꾸만 수려한 풍경을 내어 놓기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버립니다. 해협에 가득찬 안개 너머로 설산 빙산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계곡에는 가을색이 깊게 드리워져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거벽 사이마다 폭포들이 쏟아지고 구름인지 빙하인지 분간키 힘든 햐얀 천들이 산허리를 휘감으며 다가왔다 뒤로 빠지는 풍경들. 나는 승용차가 아닌 구름을 타고 날으는 신선입니다. 100년의 알래스카 철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대한 Portage 터널을 지나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재삼 인식하게 됩니다. 차와 기차가 번갈아 왕래하는 이 굴길은 무려 수 킬로나 이어지는데 13불의 통행료를 내어야 할 만큼 단단한 암석을 쪼개면서 개통한 하나의 대단한 걸작품입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말자 오른쪽 자갈길로 들어서면 이내 트레일 헤드가 나오는데 거저 등산로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곰을 주의하라는 그림 하나 세워뒀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 하나 세워두지 않은 주차장에서 비옷과 장비들을 챙겨입고 후드를 쓰고 단단히 졸라매고 초반 숲길을 걷는데 행여 누구라도 마주친다는 희망이 있다면 덜 위축이 될텐데 지형이나 주변 환경이 꼭 곰이 출현할 같은 곳입니다. 누구를 기다려보나 하고 망설이다가 이 비에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하고 체념을 하고 홀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왕복 7km. 폴티지 고개에 올라 전후로 펼쳐지는 빙하들과 그 빙하가 녹아 이룬 옥색 호수를 감상하고 내리막 길의 그 호수까지 이르는 트인 리지를 걷는 그리 길지 않은 그러나 경치가 너무도 미려한 트레일 입니다.
2,3십분 줄행랑 치듯 달려 올라가면 저 숲길을 통과하고 목초지를 걷게 되어 시야가 확보되니 곰의 출현도 미리 알 수 있으리라 혼자 별 통밥을 재봅니다. 아무튼 열심히 자갈길을 치고 올라갑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전면에 산마루 뒤에 숨어 있던 Portage 빙하가 솟아오르고 뒤를 돌아보면 위티어 마을이 점점 작아지면서 건너편 산봉들 너머로 또 다른 빙하군들이 숨바꼭질 놀이 들켜버린 것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은 어느새 수로가 되어 시내가 되어 흐릅니다. 한참을 오르니 오른쪽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모여들어 길을 물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혹 희망서린 기대지만 누가 뒤 따라 올라 올수도 있고 또 내가 되돌아 내려 올 길이기에 잠시 수고를 해 물길을 길옆 도랑으로 돌려놓습니다 이중으로 미니 보를 만들어 주니 어느 정도 물길이 잡히고 도랑으로 콸콸콸 빗물이 흘러들어가니 뿌듯한 마음으로 가볍게 고갯마루를 넘습니다.
마루에 올라서니 앞에는 폴테지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고 좌로는 만년설산이 우로는 장대한 폭포가 오늘따라 유달리 길게 낙하하고 뒤를 돌아보면 소담스런 해안 마을 위티어를 감싼 빙하들과 해협이 풍경화가 되어 보입니다. 한컷 한장면을 찍다가 이제는 숫제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있는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서 한폭에 담아봅니다. 또한 내 기억과 내 가슴에도 가득 채우면서 말입니다. 비는 여전히 소리 없이 뿌리지만 나만의 정상 등정 후 치루는 의식같은 세레모니를 오늘도 변합없이 거행합니다. 정상주 한잔 쭈욱 들이키고 한없이 넓어진 폐부로 한 개피의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것. 속세에서의 맛보다 비교할 수 없도록 더욱 감미롭습니다. 더욱 가벼워진 발길. 바람과 함께 이 낯선 자연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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