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미쿡에…
— 10/09/17
동란이 끝나고 개인위생이 좋을리 없던 시절, 어른들은 늘 누런 코를 달고 다니던 우리를 싸잡아 코흘리개라 불렀다. 또래의 우리 코흘리개들은 학교담에 기대 햇볕을 쬐며 배급으로 받아먹던 옥수수빵의 출처와 우리모두 미국을 가본적 없었지만 바다건너 선망한 그곳 문화와 눈 푸르고 코큰 사람들의 이야기를 곧잘 하곤 하였다 게중에는 정갈한 은빛 기계에서 하얗게 터져 쏟아지던 팝콥의 버터향과 고무신과 바꿔먹던 엿과는 종류를 달리하는, 깜찍하리만큼 달콤한 위글리 껌의 추억이며 은박지에 싸인 허쉬 쵸콜렛의 단아함과 버짐낀 입속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그 독특한 풍미등이 있었다.
늘 깊게만 기억되는 푸른 눈의 양키 키다리 아저씨와 동화책에만 나오는 금발의 미국 여자들, 그들의 양철로된 런치박스를 한손에 든채 가녀린 허리때에 맵씨있게 늘어져 있던 리본은 또 얼마나 멋스러웠는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시샘으로 기억되는 미쿡의 인상이었다
운명이었는지 선택이었는지 세월은 흘러 어째튼 나는 그 미쿡의 땅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몇해전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미국인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수백장의 사진을 커버스토리로 뽑아 게재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사람 좋아뵈는 흑인 아줌마도 있었지만 터번을 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도계의 사진도 있고 화장법을 달리하는 아시안계의 여성도, 그리고 키파를 쓴 유태인의 모습은 물론 잘 다듬어진 콧수염을 달고있는 중동계 아저씨도 있어 합중국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린 나에게 인상지어졌던 키크고 푸른 눈의 아저씨나 금발의 잘록한 여인은 이제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이 무슨 자극이 되었는지 혹 무의식의 반영인지, 우리 아이들이 우리가 떠난 후 이땅에서 무엇으로 아니 누구로 살게될지 한번쯤 가늠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는 것이 달라진 세상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부모세대들의 모임인 이민교회와 한인회를 추억할까, 그리고 나아가 다른 켜뮤너티는 한인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를 미루어 생각으로 가만히 굴려보았다
사람은 어차피 무리지어 살게되어있고 그 무리는 여러가지로 갈래지어 다양하게 존재하게 되지만 대부분 그중에서도 피로 상징되는 민족과 언어라는 동질성을 내세워 구별지어 살게 되어 있을 것이다 세계속에 한인들은 어디든지 살고 있으며 <동화같은 나라> 미쿡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와이에서 플로리다까지 알라스카에서 뉴햄프셔까지 크던 작던 그만한 모임을 갖고 연대하며 살아 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세상일이 그렇듯 더러는 갈채속에 더러는 그만한 크기의 눈총속에 그들의 메카니즘속에서 그런대로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즈음의 어느 대통령후보로 나오신 분의 얘기를 듣다보면 이민온 출신지역을 악의 온상으로 전제하거나 인종과 종교와 문화를 달리하는 미국의 다른 모든 커뮤너티를 John Stewart Mill의 인용처럼, 같은날 같은 모양으로 털이 깍이는 수천마리의 양들과 그들을 몰고 다니는 몇마리의 개와 그리고 한마리의 양치기로 구성된 사회를 목적해야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시대 착오적 망령의 넋두리며 그 무슨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곡절일까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조금 더 조직화되면 나찌가되고 거기에 못미쳐도 기껏해야 독재일 터인데 문제는 히틀러의 나찌당도 33%라는 독일 국민들의 엄연한 지지가 있었으며 유신헌법의 경우에는 더 심하여 91% 투표에 91.5%의 찬성으로 그 체제를 수용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한다는 것이다
2016년에 그것도 민주주의 꽃이라는 미국땅에서 그런 시대착오적인 일이 설마 벌어질까라고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순진한 축에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법과 체제는 일단 구성되어지면 나름의 관성을 가지고 있어 일정부분 유지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그에 따른 역사적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담된다. 실례로 지금의 상식으로는 칼도 들지않는 어불성설이지만 불과 150년전에 흑인 노예를 폐지하는데 미국역사는 전쟁을 수행해야했고, 1919년에서 1933년에 걸친 이땅의 금주법이 연방헌법을 바꿔가면서까지 시행되어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게다가 그분을 지지하는 세력도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선거결과는 또 모를 일이다 어림없어,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양반이 덜컥 되는날이 와서 그분의 정책이 힘을 받아 제도가 정착되고 세월이 흐른다면 우리 아이들은 천지개벽한 환경속에서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박물관에서나 혹 역사교과서에서 한줄짜리 내용으로 “한 때 다양한 소수민족의 이민은 시대의 요청에 맞추어 끊어지고 결국 미국 문화에 고스란히 흡수되어 이제는 얼마 안되는 보호구역과 박물관에만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기술하게 된다면 우리는 죽어 일없지만 살아갈 후대는 어디를 기대 우리를 추억하며 어는 곳을 향애 할아버지 할머니를 불러야 할까 생각해보니 그저 끔찍하기만 하다 이런 우려가 그저 호들갑으로 끝나려면 소스라치는 놀라움을 앞세워서라도 우리 모두 선거장에 나가봐야 할 일이다 언제나 국가권력은 지지가 있는만큼 휘두르게 되어있고 그 지지는 국민된 자의 의무이며 특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민주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고도 최후의 자기방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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