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버리는 지게

옛날 어느 고을에 총명하고 마음씨 착한 봉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봉이의 부모님은 몹시 게으른 농사꾼이었습니다.
가진것도 넉넉지 못한데다 모든 일에 게으르고 보니,
집안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소년의 어머니는 마음씨가 곱지 않아서
몸져 누운 시아버지를 여간 구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는 그렇더라도 아들이 효성스러우면 좋으련만,
이 게을러 빠진 농부는 뭐든지 자기 부인의 말을
따르는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봉이 소년은 그런 부모님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리고, 앓아 누운 할아버지가 불쌍하여
늘 할아버지 곁에서 알뜰살뜰 보살펴 드렸습니다.
저녁 때가 되면 봉이는 자진해서 할아버지 방의 군불을 땠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방이 더울 만큼 때지 않고 시늉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녀석아, 웬 나무를 그렇게 처때는 거냐?”


군불 때는 봉이에게 어머니가 소리 치면, 봉이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이 나무는 제가 지난 가을에 할아버지
군불감으로 따로 해다가 말린 거예요.”
그 뿐만 아니라, 소년은 늘 군불 속에
감자나 고구마를 구웠다가 몰래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밤에 소년이 군 감자나 고구마를 가지고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면,
저녁을 변변치 않게 먹은 할아버지는 여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소년의 할아버지는 너무 늙은 데다 몸까지 건강치 못한지라,
먹을 것을 보면 마치 어린애처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할아버지 방에서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말동무를 해드리던 봉이는, 할아버지가 잠이 드신 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때마침 안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지내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봉이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아버님 말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병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느냐 말예요.”
봉이 어머니는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그러니, 낸들 어쩌겠소. 돈이 있어야 아버님 병을 고쳐드리지”
“누가 병을 고쳐드리자고 이러는 줄 아세요?
왜 여태 안 돌아가시냐는 거예요”
“아, 사람의 목숨을 누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겠소? 우리가 참아야지”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병든 어른 모시는게
쉬운 일인 줄 아세요?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죽겠어요”

“너무 신경쓰지 마시오. 그리고, 아버님 시중은
봉이 녀석에게 맡기면 되지 않소.”
“나는 그게 더 속이 상해요. 봉이는 우리 아들인데,
그 녀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제 어미 아비보다는 할아버지한테
더 지성이니 말예요. 이제 우리도 아들의 효도를 받을 때가 되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봉이를 아버님 시중이나 들게 해야 하지요?

나는 더 이상 그 꼴은 못 보겠어요”
“그렇지만 어쩌겠소. 아무튼 돌아가실 때까지는 모셔야 되지 않겠소”
봉이는 어미와 아버지가 나누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더욱 할아버지가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은밀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여보, 내게 한 가지 생각이 있어요.
당신 내일 아버님을 지게에 지고 산에다 버리고 오세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리 모시기가 귀찮다해도 어찌 그런 생각을...”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예요. 당신 고려장이란 말도 못 들어봤어요?
늙은 노인을 산에다 버리는 것은 예부터 있어 온 풍습이라고요.”

“하긴 그렇구려. 하지만, 아버님께 뭐라고 해야 하지?”
“아버님은 먹을 것을 드린다면 어디라도 따라가실 거예요.
정신이 없는 노인이니까요”“그, 그렇긴 하지만...”
“여보, 꼭 그렇게 하세요. 난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아요.”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밖에서 듣고 있던 봉이는

너무나 놀랍고 슬펐습니다. 그날 밤 봉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대로 할아버지를
산에다 버리고 올 것이 뻔했습니다.
봉이는 할아버지가 가엾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기르실 때는 얼마나 귀여워하셨을까,
얼마나 소중한 자식으로 생각하셨을까를 생각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워졌습니다.
그러다가 봉이는 문득 한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옳지, 그 방법을 써야겠군.”

봉이는 혼자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봉이의 어머니는 그래도 양심이
조금 남아 있었던지 할아버지의 진지상을 다른 날보다 잘 차렸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웬일로 생선 도막이 다 상에 올랐구나!”
할아버지는 밥상 곁에 앉아서 가시를 발라드리는 봉이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부터는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더욱 잘 모시려나 봐요”
“흐음, 그래야지. 이제 철들이 드는 모양이야.”

아침 식사가 끝나자 봉이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새 옷을 입으니까 기분이 좋구나. 봉아, 네 말대로 이제부터
아비 에미가 나를 잘 돌보려나보다. 고마운 일이지, 고마운 일이야.”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했습니다.


“아버님, 제가 모처럼 산에 모시고 가서 맛있는
실과를 따드릴 테니 지게에 앉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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