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패러독스'에 갇힌 한.중.일 정상- 풀지 못한 과거사, 지정학적 갈등만 커져

한·중·일 정상회의가 3년 만에 성사됐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산재한 갈등 요소들로 인해 벽만 높고 갈등만 깊어진 형세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끼인 형국 등 우리 정부로선 갈등 요소만 부각되고 있다. 낮은 단계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정치적 갈등까지 해소하자던 3국 협력의 취지마저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3국 정상회의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3국 협력의 기본 정신인 ‘경제·사회·문화 분야 교류 강화’가 아예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에 잠재돼 있던 각종 지정학적 갈등 요소가 한꺼번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강대국 틈에 끼인 ‘샌드위치’나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등 현 정부 외교·안보팀이 극도로 꺼리던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번 회의는 물론 그 이후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키’를 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3국은 정상회의 공동문서에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문구를 반영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선언적 의미일 뿐이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도 불안 요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만약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지 못하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국 편을 들어 달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이 문제가 실제화됐다. 중국이 건설한 남중국해 인공섬 인근에 미군 구축함이 진입한 것이다. 앞으로 일본은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구 열도) 영유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미·일 군사동맹의 견고함을 보이려 할 것이다.


물론 아베 총리가 잘 차려진 3국 정상회의 ‘협력 테이블’에서 중국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일본 정부 차원의 친미(親美)적 언급이 나올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원론적 입장만 개진한 우리 정부는 더 곤혹스러워진다. 현 상황 자체가 외교적 부담인 셈이다.


이번 회의 계기에 열리는 한·중, 한·일 양자 정상회담이 여러 온도차만 부각시킬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화기애애하게, 아베 총리와는 냉랭하게 회담하면 한국은 여전히 중국 편이라는 ‘중국 경사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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