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슨스에서 교수가 된 한국 청년

87년생 임정기씨는 지난해 7월 서른 살에 미국 뉴욕의 파슨스디자인스쿨(이하 파슨스) 교수로 임용됐다. 종신 교수직이 아닌 4년 전임 교수다. 세계 3대 디자인학교로 꼽히는 파슨스엔 에린 조 교수 등이 몸담고 있지만, 이렇게 젊은 한국인 교수는 최초다. 


그가 가르치는 분야는 디자인 싱킹이다. 사람 간의 공감, 이타심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융합적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구글·애플·테슬라 등 세계 기업이 앞다투어 도입한 혁신적 방법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몇 년간 내로라하는 경영대와 디자인 학교에서 디자인 싱킹 관련 학과를 양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전엔 기업이 단기간에 큰 경제적 이익을 내는 데 주력했다면 디자인 싱킹은 다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친환경, 윤리 경영 같은 가치 있는 목표를 둔다. 임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똑똑한 소비자들은 자기만의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밸류 컨슈머(value consumer)의 등장에 따라 기업의 경영 전략도 훨씬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아웃 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공유 가치를 내세운 식품 기업 네슬레 등이 그 예다 


 


  박사 학위도 없이 교수가 된 그는 기술과 미디어, 인문학의 통섭을 추구하는 ‘실전형’ 인재다. 열여섯에 홀로 유학길에 올라 고교 졸업 후 뉴욕대학교에 진학했다. 20대엔 인권에 관심이 깊었다. 스스로 전공 분야를 개척하는 자유 전공 학부를 선택해 디지털 미디어 발달이 인권 운동에 미칠 영향을 연구했다. 한 학기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정책을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대학 졸업 후 한국 국적을 지닌 그에게 남은 과제는 군 복무였다. 귀국해 공군을 전역한 후 다시 뉴욕에 돌아와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바쁘게 살아온 20대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이때였다. “뉴욕 사회와 군대는 언어부터 행동‧사고방식까지 모두 다르니까요. 적응하기 쉽지 않았어요. 인턴 면접 때도 2년간 어디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에 온 후 매년 한두 번은 한국을 찾았는데, 당시 4년간 한 번도 한국에 못 갈 만큼 바빴다”고 돌이켰다. 


 


대학원에선 도시 정책을 역사·사회학·건축학·생태학 등 다각도로 접근하는 ‘도시 과학’(Urban Science)을 배웠다. 디자인 싱킹을 토대로 한 신생학과다. 그는 학교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3년 뉴욕 시의회 인턴이 된 것을 계기로 시장 선거에 입후보한 크리스틴 퀸 캠프에 참여했다. 퀸은 2006년 뉴욕 시의회 의장이 된 레즈비언 정치인이다. 선거는 졌다. 하지만 임 교수에겐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제 정치에서 활용해 볼 기회”가 됐다. 


그 후엔 창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어플리케이션 스타트업 ‘스텔라’를 만든 것. ‘스텔라’는 스토리보드‧스크립트‧예산서 작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룰 수 있는 앱으로, 구글의 디자인 싱킹을 토대로 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30 Weeks’에 선발되기도 했다. 


현재 임 교수가 가장 공을 쏟는 프로젝트는 디자인 싱킹의 효과를 측정하는 시스템 개발이다. 그중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 Processing)는 그의 전문 분야다. 한 회사의 매출은 물론, 사회적 공헌 정도, 소비에 미친 정서적 영향 등을 빅데이터 등 다양한 도구로 수치화하고, 이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임 교수가 대학원 졸업 후 처음 파슨스에서 강의를 맡은 과목이기도 하다. 


 


그는 파슨스 교수가 된 건 “그간 '시작'해 온 많은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성공보단 실패가 많았고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삶과 세상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달렸습니다. 지금 미국 뉴욕에선 디자인 싱킹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한국에서도 더 정교하게 발전된 디자인 싱킹을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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