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트럼프 외교궁합

 남녀 간에 궁합이라는 게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은 같은 이념의 정권이 만날 때는 궁합이 좋았다. 그러나 엇갈리면 상당한 파열음을 냈다. 특히 한국의 진보정권과 미국의 보수정권은 불안정성이 높은 궁합이다. 우리는 이미 이를 경험했다.


시간을 20년 전으로 돌려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대선을 치러 이듬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DJ는 취임 이후 햇볕정책을 실시해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당시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 기간이었다. 진보정권이었던 클린턴 행정부는 남북문제를 DJ에게 일임했다. DJ는 주도권을 쥐고 남북문제를 풀어나갔고, 남북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결과, DJ는 꿈에 그리던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국과 미국의 허니문은 곧바로 끝났다. 2001년 보수정권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정권이 출범한다. 때마침 2001년 9.11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공포와 경악에 빠졌고, 테러 방지에 국력을 집중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부르며 대북 압력을 고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DJ의 햇볕정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 정부의 유화책과 부시 행정부의 초강경 정책 사이에 이견, 갈등, 마찰은 결국 폭발하고 만다.


DJ는 2001년 방미해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정부는 성과를 내고 있는 대북 정책을 자꾸 미국에서 발목 잡는다고 생각했고, 미국은 북한 같은 깡패국가와 한국이 위험천만한 거래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오해와 불만은 정상회담장에서 터지고 만다. 부시가 DJ를 앞에 두고 "this man(이 인간)"이란 호칭을 쓴 것이다.


사석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기자회견 자리였다. 최소 'Mr. President(대통령님)'라고 불러야 할 자리였다. 부시가 DJ를 ‘this man’이라고 지칭한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무시했다며 ‘외교 참사’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후 햇볕정책은 사실상 끝났다.


부시 대통령 이후 한국은 보수정권(이명박-박근혜)이, 미국은 진보정권(오바마 연임)이 각각 들어섰다. 한국이 보수정권이고 미국이 진보정권이면 별 문제가 없다. 자유주의적인 미국의 진보정권은 한반도 긴장을 야기하는 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던 미국에 2017년 보수정권인 트럼프 정권이 들어섰다. 한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20여년 만에 불안정성이 높은 조합이 다시 성립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압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화해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일제히 문재인-트럼프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미국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의 친구다. 그러나 한국도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대통령은 또 사드와 관련,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사드 반대 입장을 시사하는 한편 대미 외교에서 자주노선을 견지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강대강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문재인 vs 트럼프 조합이 DJ vs 부시 조합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는 점이다.


부시도 집권 당시 시쳇말로 ‘또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측불가능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그 자신이 텍사스 주지사를 연임하는 등 정치인 출신이었다. 정치문법을 체화한 인물이었다. 즉 그의 일탈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생을 부동산업자로 살아왔다. 정치 문법을 전혀 모른다. 평생을 정치 환경에서 살아온 부시도 한국과의 외교에서 그토록 많은 파열음을 냈다. 트럼프는 불문가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초보라면 미국 외교를 총괄하는 국무장관이라도 베테랑이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외교가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부시 행정부 때는 노련한 곤돌리사 라이스가 국무장관으로서 미국 외교의 '앵커' 역할을 했다. 그런데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왕초보'다. 트럼프-틸러슨 두 초보가 미국이란 대형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순간의 실수가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안전벨트를 두 겹으로 메도 부족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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