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에 대한 미 재무부 조치 후 화이자-앨러간 1천600억 달러 합병 무산
04/07/16미국 거대 제약업체 화이자와 보톡스 제조업체로 유명한 아일랜드 기업 앨러간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됐다. 미국 정부가 세금을 줄이려는 화이자의 이번 인수·합병 시도를 겨냥해 초강력 규제안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화이자는 6일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그동안 들어간 협상 비용 1500만달러를 앨러간에 지급하기로 하고 인수·합병 협상을 상호 합의하에 종료했다”고 밝혔다. 화이자는 지난해부터 앨러간을 1600억달러(184조원)에 사들이는 인수·합병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성사되면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가 탄생하게 돼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화이자가 합병회사의 본사를 아일랜드에 두기로 하면서 조세회피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의 법인세율은 35%인 반면, 아일랜드는 12.5%에 불과하다. 합병을 통한 본사 이전이 불법은 아니지만, 돈은 미국에서 벌고 각종 연구·개발 지원과 인프라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법인세를 덜 내겠다는 것이어서 미국 납세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2014년에는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이 캐나다 체인 팀호튼과 합병해 역시 본사를 옮기는 식으로 ‘절세’를 한 일이 있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를 막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오바마 정부는 이후 이런 방식의 세금회피 규제 방안을 만들어왔다.
미 재무부는 지난 4일 세금 바꿔치기에 대한 강력한 규제안을 발표했다. 규제안에는 미국 주주의 지분율 계산에서 이전 3년간의 국경 간 거래는 제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주주의 지분율이 합병사의 60%를 차지하면 일부 규제가 적용되고, 80% 이상이면 미국 기업처럼 과세하게 돼있다. 화이자가 예정대로 앨러간과 합병했다면 통합된 회사의 지분을 56% 갖는다. 그러나 이번에 마련된 규제에 따르면 이전 3년간인 2013~2015년의 국경 간 거래가 제외되고, 미국 주주 지분율 60~80%에 해당되는 과세 규정을 적용받는다.
오바마는 재무부 발표 다음날인 5일 백악관 대변인 정례브리핑에 깜짝 등장해 최근 공개된 ‘파나마 페이퍼스’를 거론하면서 부자들의 세금 회피를 비난했다. 그는 “변호사와 회계사만 있으면 보통 시민들이 지켜야만 하는 책임들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법이 설계돼 있다”며 돈 있는 이들에게 유리한 법을 문제 삼았다. 그는 “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법규를 준수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고,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거대기업들이 다른 룰의 적용을 받지 않고, 부자들이 시스템을 악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역외 재산 도피나 세금회피는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계속 제기해온 문제여서 미 대선 이슈로도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까지 직접 나서자 궁지에 몰린 화이자는 결국 합병을 포기했다. 화이자는 성명에서 “미 재무부가 추진 중인 조치에 따른 것”임을 인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