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린드의 '트럼피즘과 클린턴니즘이 미국의 장래' 트럼프와 클린턴이 아니다.
04/20/16미 뉴욕 타임스는 대통령선거 뉴욕 경선을 사흘 앞두고 오피니언란에 정치평론가 마이클 린드(Michael Lind)의 '트럼피즘과 클린턴니즘이 미국의 장래'라는 글을 실었다. 트럼프와 클린턴이 각각 승리한 뒤 의미가 한층 심중하게 다가오는 린드의 글을 전역해 소개한다.
19일의 뉴욕 경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나아가 어느 후보가 양당의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미 확실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곧 트럼피즘은 공화당의 미래를, 클린턴니즘은 민주당의 미래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의 국수주의적 대중영합주의를 잠시 후면 자유시장, 제한되고 작은 정부라는 정통적 신념으로 되돌아갈 정당에서 벌어진 일시적 탈선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역시 젊은 사람들의 버니 샌더스 열광을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및 힐러리 클린턴이 공유하고 있는 중도-좌파 합성체계 대한 거절로 보는 것도 착각이고 판단 미스다. 각자 다른 모양새로 트럼피즘과 클린턴니즘은 미국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속을 명확히 정의내린다.
올 미국 대선은 닉슨과 록펠러, 험프리와 로버트 케네디가 등장했던 1968년 이후 가장 거친 바람이 휘몰아친 선거의 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요동의 근원은 다르다. 1968년 대선은 양당 지지층의 재편성이 획기적으로 이뤄져 20세기 중반까지의 기존 민주당원 및 공화당원 지층이 붕괴된 뒤 양당 간에 유권자 블록이 이리저리 뒤섞였다. 올해 2016년 대선을 맞아 반세기 동안의 지지층 재편성 작업이 완료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끄트머리에서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지지층 재편성 아닌 정책의 재편성으로, 현존의 유권자 기반를 상대로 양당이 무엇을 표방할 것인가를 재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은 1980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을 새 정치 시대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2016년의 눈으로 볼 때 레이건 그리고 1992년 대선 승리자 민주당 빌 클린턴은 과도기적 인물로 부각된다. 2000년까지 이어지는 이 두 인물의 시대 동안 사회적 견해는 보수적이되 경제적으로는 대중영합의 포퓰리즘에 쏠리던 민주당원이 남부를 중심으로 해서 공화당원으로 지지 정당을 갈아탔다. 닉슨과 대비되는 넬슨 록펠러 지지의 온건 공화당원도 반대 방향의 길을 택했는데 이 같은 이합집산은 서서히 이뤄져 두 대통령 대에 완료되지 못했다.
로널드 레이건 시대의 공화당은 기업과 작은 정부에 초점을 맞춘 당내 전통적 보수파 세력이 민주당에서 건너온 '레이건 민주당원'이라는 새 세력보다 힘이 셌다. 레이건 자체도 기득권층 미달 유권자에 포커스를 마추는 포퓰리스트보다는 배리 골드워터처럼 고전적 자유주의자 및 정부축소론자의 면모가 훨씬 강했다. 그래서 레이건은 개인보다는 정부의 입김이 강한 은퇴국민연금 및 노령의료보장의 폐기를 주장했으며 미 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었다.
빌 클린턴도 당원들이 뒤섞이던 시대의 과도기적 인물이었다. 민주당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었던 조지 맥거번의 1972년 대선 때 선거운동원으로 뛰었던 클린턴은 곧, 민주당에서는 빠져나갔으나 공화당에 완전히 동조할 수 없는 '레이건 민주당원'의 규모와 그 흔들림을 감지하고 '신민주당' 노선을 개척했다. 군대, 경찰, 사형제, 검열제 등에서 진보적 좌파와 거리를 둔 것이다.
그러나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반세기만에 하원을 장악하고 상원까지 거머쥘 때 많은 중도 및 보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낙선하고 공화당 의원들이 대신 입성했다. 그 대부분이 남부와 서부 선거구 출신이었다. 이 괴멸에서 살아남은 민주당 의원들은 뉴잉글랜드 및 서부 해안, 대도시 및 대학 도시 그리고 흑인과 히스패닉계 거주 선거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또한번 민주당이 대참패할 때 잔존해있던 민주당 내 중도 및 보수 성향 의원들이 몽땅 제거되었다.
오늘날 민주당의 유권자 기반은, 단순하게 그려보자면 북부, 중서부 및 서부해안 내 온건 공화당 뿌리의 개종 백인 당원과 흑인 및 히스패닉계 당원의 동맹체라 할 수 있다. 2016년 오늘의 공화당은 한때 반대당의 주류 지지층이었던 남부 백인층과 북부백인 노동자층에게 표를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당원 재편성이 완료되면서 정책 재편성이 시작됐다. 역사의 정당으로서 상속받은 정강과 현 지지 유권자들의 가치관 및 이해 사이에 드러난 갭을 메꾸기 시작한 것이다.
공화당이 누대로부터 상속 받은 정책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자유무역과 대규모 이민 지지, 그리고 은퇴국민연금과 노령의료보장과 같은 사회보장 복지의 축소를 강조하는 것으로 20세기 후반의 유물과 같다. 새 공화당 주축 지지층으로 올라선 백인 노동자 계급이 이 유물 정강에 대해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무역과 이민자들로 일자리가 드물어졌으며 은퇴연금과 노령의보는 부자들이 아닌 자기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보루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감정을 부추기는 보수적 포퓰리즘의 말등에 올라탔다. 그러나 트럼프가 나오기 전 유럽 스타일의 우파 포퓰리즘이 이미 공화당에서 싹을 틔웠는데 특히 보호주의와 이민 제한이 주변부에서 중심 이슈로 밀고들어섰다. 트럼프가 2015년 5월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정치자금 기부자층과 보수 싱크탱크 및 정치잡지에서 과도하게 세력을 떨치고 있던 정부역할 축소론자들이 작은 정부론을 무시하는 대중영합 포퓰리스트에게 밀리나고 있었다.
1990년대 공화당 당내 논전에서 주변 이슈였던 불법 체류자에 대한 반대 및 추방이 이제 '진정한 보수주의자냐 아니면 이름만 공화당원이냐'를 가리는 시험지가 됐다. 트럼프가 나오기 전 공화당의 포퓰리스트 의원들은 힘을 모아 행정부의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두 번이나 좌절시켰다.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 지향의 공화당이 추구해오던 은퇴연금의 부분 민영화안도 부시 행정부 때 당내 새 세력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트럼프는 정통 보수 공화당이 하겠다고 내놓은 것과 지금의 지배적인 공화당 지지자가 실제로 원하는 것 사이의 갭을 확연히 노정시켜 주었다. 현재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은 중산층에게 주어지는 사회보장 복지 프로그램의 온존 플러스 불법 체류자, 무슬림, 무역 경쟁국 및 무임승차 우방에 대한 꾸짖음과 탄압이다.
민주당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정책 재편성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유의할 사실은 젊은층의 버니 샌더스 열광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 최대 갈등은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 사이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과 이전 빌 클린턴 정책 유산 간의 갈등이다.
빌 클린턴은 백인 이외의 소수계, 미혼 여성 그리고 진보 성향 유권자 등 떠오르는 미국인뿐 아니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반해 민주당원으로 전향한 백인 노동자층 양쪽에게 어필하고자 지금도 애쓰고 있다. 오늘날 민주당 내 진보주의자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당시 백인 유권자를 잡기 위해 흑인이 타깃이 된 범죄자 수형확대법을 만들고 군대의 동성애자 차별 기조를 지지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거기에 민주당이 1992년부터 지금까지 치러진 대통령선거 일반투표에서 2004년만 빼고 모조리 승리한 사실은 민주당 전략가들을 부추긴다. 레이건 때 공화당으로 넘어간, 사회적 보수주의에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레이건 민주당원을 다시 민주당원으로 빼내는 데 더 이상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이끌어낸 유권자 연합체가 시간과 더불어 더 커질 것이며 이로 해서 민주당이 대선 승리, 행정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거의 필연에 가깝게 됐다고 본다. 히스패닉계 인구비중 상승에 바탕을 둔 오바마 연합체의 장기적 성장세는 결국 입법부를 아우르는 전체 권력 장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1990년대처럼 백인 노동자층에게 기회주의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사회적, 인종적 진보주의에다 친기업, 금융계친화적 경제정책을 합성 융합한 클린턴적 합성체계를 더 이상 희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의 이 같은 정책 재편성은 힐러리 클린턴으로 하여금 남편 빌의 정부 정책 상당수와 거리를 두고 대신 당의 핵심 지지층이 좋아하는 정책을 껴안도록 했다. 해서 형사범 양형 사안부터 이민 강화에 이르는 힐러리의 정책 변신이 있었다. 샌더스의 도전이 없었다해도 힐러리는 좌 클릭 이동을 행했을 것이다. 레이건 민주당원이 떠나면서 민주당 지지층이 좌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버니 샌더스의 어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선 힐러리 클린턴은 스스로 인정하듯이 비슷한 정책과 비슷한 지지층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나 남편 빌 클린턴에 비해 카리스마가 덜한 후보로 대중을 열광시키는 힘이 딸린다. 또 단순한 세대 현상일 수 있다. 2008년 대선 때의 젊은층은 지금의 후배들이 샌더스에 혹하듯 오바마에 열광했었다.
오늘의 민주당 지지 기반에 중요한 사안인 사회 및 인종 현안에서 메시지를 수정한 사람은 클린턴이 아니라 샌더스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샌더스는 단일 현안 후보답게 계층, 불평등 및 정치 부패 주제에 외곬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유세를 통해 그는 경찰력 내 인종 격차, 형사범 과도 양형, 환경과 이민 등 다른 현안을 전보다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적 경제학보다 정체성 정치학에 중점을 두는 현 민주당 모습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1982년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7개 간부모임을 인정했으니, 여성,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게이, 진보주의자 및 기업/전문직이 그것이다. 34년이 지난 오늘 이것이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이 딛고 선 기반이다.
샌더스를 미는 민주당 좌파는 당이 정치자금을 걷기 위해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에 자세를 낮추는 것에 반대한다. 실제 두 곳에서 민주당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강경 진보파들도 보수주의 후보들과 싸우게 되면 우파 대안보다 점진적이며 금융계 친화적인 클린턴니즘을 선호할 것이 불문가지다. 민주당 차세대 유력 주자들인 텍사스의 줄리언과 호아킨 카스트로 형제나 뉴저지의 코리 부커 상원의원도 독불장군식 아웃사이더인 버니 샌더스보다는 클린턴 부부 및 오바마와 틀이 훨씬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샌더스 후보에 의해 구체화한 민주적 사회주의 개념에 대한 현 밀레니엄 세대의 동감이 2030년대나 2050년대에 '사회민주주의 아메리카'로 자라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으로 중대한 실수라는 점이다. 반세기 전 베트남전 반전 세대들이 아메리카 패권의 레이건 세대에게 길을 내줬으며, 60년대의 히피들 상당수가 80년대의 유복한 유피로 변신했었다.
이 모든 이유로 해서 미국 민주당원의 미래는 클린턴니즘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 빌 클린턴니즘에서 백인 노동자층에 대한 전략적 양보를 제거한 신자유주의를 골자로 해서, 살짝 더 진보주의적 버전인 힐러리 클린턴니즘이 미래인 것이다.
맞은편 당에서는, 엘리트 정부축소론과 현장 투표권자 포퓰리즘 간의 갈등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현장의 공화당 투표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소될 것이다. 사회보장 복지에서는 세금과 정부 역할을 더 인정하게 되는 좌 클릭, 이민과 무역은 규제를 강화하는 우 클릭 이동을 통해 공화당의 새 정통이 태어난다. 도널드 트럼프의 선동적인 접근법은 사라지지만 에센스는 간직된다.
역사를 좀 더 멀리 내다보려고 애쓰면서 우리는 미국에서 뉴딜 정책에 이끌린 백인노동자 민주당원과 넬슨 록펠러의 온건파 공화당원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을 2016년 오늘 깨닫는다.
클린턴 민주당원과 트럼프 공화당원, 클린턴니즘과 트럼피즘만이 지금 여기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