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들의 '수 싸움' 아이오와 드라마를 만들었다.
02/04/16미 대선에서 산골마을 버몬트 출신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이 정도 돌풍을 일으키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오와 코커스 직전까지 주류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낙승을 전망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힐러리 캠프 매니저인 로비 무크(36)는 지난해 3월 샌더스가 출마선언을 하기 전부터 “샌더스가 뛰어든다면 쉽지 않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힐러리에게 경고했다. 버몬트에서 나고 자란 무크는 샌더스의 저력을 잘 알고 있었다. 샌더스는 1981년 벌링턴 시장에 당선된 뒤 선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무크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출사표를 냈을 때 힐러리보다 50%포인트 뒤에 있던 샌더스는 9개월 만에 힐러리와 동률이 됐다.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경선에서는 샌더스가 우위에 있다. 3일 발표된 매세추세츠대학 여론조사에서 샌더스는 61%의 지지율로 힐러리(32%)를 거의 30%포인트 앞섰다.
‘아이오와 드라마’ 뒤에는 두 캠프의 참모들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무크와 힐러리 캠프 참모들이 2008년 ‘아이오와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2일 전했다. 매일 아침 뉴욕 브루클린의 힐러리 캠프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무크는 “아이오와를 위해 오늘 무슨 일을 했습니까?”라고 적었다.
무크와 한치 양보 없는 수싸움을 벌인 샌더스의 ‘브레인’은 제프 위버다. 무크와 위버는 데이터에 근거한 냉정한 의사결정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0대부터 후보와 함께한 점도 비슷하다. 열네 살 때부터 주의회 선거 자원봉사를 했던 무크는 2008년 경선에서 힐러리 캠프의 지역조직을 이끌면서 힐러리와 인연을 맺었다. 위버는 1986년 샌더스가 버몬트 주지사에 출마했을 때부터 ‘샌더스의 사람’이 됐다. 당시 스무 살이던 위버는 보스턴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주의) 반대 깃발을 내걸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한 상태였다. 위버는 20여년 동안 샌더스의 곁을 지켰다. 2009년 좋아하는 게임과 만화 가게를 열기 위해 정치판을 떠났다가 샌더스의 대권 도전을 돕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샌더스는 그에게 “상업적이지 않으면서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현대적 캠페인”을 주문했다. 위버는 웹개발자들을 불러와 온라인 선거전략을 짜고 소액기부로 선거자금을 모았다. 자원봉사자에게는 전화로 기부금을 모으는 ‘폰뱅크’와 이웃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캔버싱(canvassing)을 주문했다. 코커스의 복잡한 계산식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학문제를 나눠주기도 했다. 아이오와는 위버의 전략이 성공적임을 보여준 첫 무대였다.
진보성향 잡지 마더존스는 “샌더스는 자신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해준 사람들과 선거 조직을 꾸렸다”고 전했다.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마이클 빅스는 2007년부터 샌더스의 대변인이었다. 현장 책임자 필 피에레몬테는 벌링턴 시의원 출신으로 16년간 샌더스와 함께했다.
민주당 내 리버럴 세력들도 샌더스를 돕고 있다. 선임보좌관 태드 데빈(61)은 민주당의 이름난 전략가다. 1988년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시작으로 2000년 앨 고어 전 부통령, 2004년 존 케리 국무장관의 선거운동에서 활약했다. 1996년과 2006년 샌더스의 하원·상원의원 선거를 돕기도 했다. 라디오 진행자 출신인 빌 프레스는 샌더스에게 워싱턴에 있는 진보성향 정치 참모들을 소개했다.
힐러리 캠프에는 수차례 선거를 치른 거물급 선거 전략가가 다수 포진해 있다. 선거대책본부장 존 포데스타(67)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을 만큼 클린턴 부부의 신망이 두텁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선임고문을 맡기도 한 그는 캠프의 ‘어른’으로 불린다. 포데스타 외에도 클린턴 가문과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들이 핵심 참모진을 이룬다. 포데스타가 설립한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의 연구원들도 각 분야 정책 보좌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힐러리 캠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다양성이다. 여성이 절반이 넘고 유색인이 3분의 1이다. 미국의 인구 구성을 그대로 옮겨오려 노력했다. 고위직 여성으로는 공보책임자이자 백악관 전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제니퍼 팔미에리, 라틴계 정치 디렉터 어맨다 렌테리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