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구의 반정부 시위....연방정부 시설 점거

총기를 소지한 미국의 민병대에 의한 반정부 점거시위가 25일만에 막을 내렸다. 새해 초부터 미국 서부의 오리건주 번스의 말뢰르 국립야생동물 보호구역 연방정부 시설을 점거한 애먼 번디(40) 등 주도자들이 지난 26일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면서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의 민병대원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 사건은 시골의 백인 목장주들이 주도한 것으로 “우리는 연방정부의 폭정(tyranny)에 저항해 싸운다”고 밝혀왔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무슬림이나 이민자들을 혐오하고,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우파들이다. 번디의 점거에 동조해 애리조나에서 달려온 존 리츠하이머는 지난해 초 프랑스 파리의 잡지사 샤를리엡도에 테러 공격이 일어났을 때 피닉스 시내에서 선지자 무함마드 만평 그리기 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우파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국가주의를 연상시키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총 들고 싸우려고 했던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이 번스의 연방정부 시설을 점거한 것은 지난 2일 설 연휴로 공무원들이 쉬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몇년 전 이 지역에서 산불이 목초지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고 맞불을 놨다가 방화죄로 실형을 선고 받은 목장주 드와이트 해먼드(73) 부자의 징역형이 연장된 것에 항의하며 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


점거를 주도한 번디는 아버지 클리이븐 번디가 지난 2014년 자신이 사는 네바다주의 연방정부 소유 목초지에서 가축들의 풀을 먹이다가 경찰과 무장 충돌을 벌인 내력이 있는 집안 출신이다.


이들이 1층짜리 건물을 장악한 뒤 주변 지역에서 이들의 동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0~30명 가량으로 늘어난 민병대는 공권력이 진압하러 들어올 것에 대비해 망루에 올라가 총을 들고 경계를 서기도 했다. 이들은 무력 충돌을 원치 않지만 공권력의 집행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개인의 총기 소지 권리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2조를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사람들이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총기를 소지할 권리는 침해 받지 않아야 한다”는 수정헌법 2조를 자신들의 무장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 주장을 외부에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언론 취재에는 협조적으로 응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 땅에서 벌목업자들이 다시 벌목을 하고, 목장주들이 가축들에게 다시 풀을 뜯기고, 농부들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어서 이 곳의 경제를 다시 부흥시키는데 있을 뿐이다.” 주도자 번디가 어느날 방송 카메라 앞에서 한 얘기다.


번스는 매사추세츠주와 비슷한 크기의 대지 위에 인구 7500명이 사는 시골지역이다. 이들의 불만은 이 광활한 대지를 대부분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오리건,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몬태나 등 서부 11개 주의 토지들의 대부분은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이 땅들은 미국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는 등의 방법으로 서부로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대부분 연방정부 소유가 되었다. 연방정부는 이 땅들을 농지 공여 등의 방식으로 개인들에게 불하했지만 서부지역의 땅들은 농사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건조지대이거나 계곡이 많아 그 속도는 매우 더뎠다. 또 상당 부분의 땅은 국립공원 부지로 묶이거나 말뢰르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됐다.


연방정부는 정부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난 풀들은 주변 목장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부터 목축업이 성행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목장주들이 이 땅들에 방목을 하자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났다. 거북이 등 야생동물 보호를 명목으로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것에 대한 각종 제약들이 법제화되었다. 목장주들은 일정 정도의 목초지 사용료를 연방정부에 내야하게 됐다. 이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목장주들과 땅주인인 연방정부 사이에는 법 집행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번디의 집안이나 해먼드 부자 모두 그런 수많은 목장주들의 일부이다.


FBI로 대표되는 법집행기관은 이들의 불법적 연방정부 시설 점거를 강제 진압하는 것을 매우 주저했다. 번디 등이 26일 체포된 것도 이들이 이웃마을에서 열리는 커뮤니티 회의에 참가하던 중 검문검색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미국 법집행기관이 백인 극우주의자들의 공권력 저항에 대해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다. 지난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 2015년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일어난 흑인들의 시위를 군대식 장비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이번 오리건주 대치는 25일만에 막을 내렸지만 텍사스주의 트리니다드에서는 비슷한 대치가 15년 가까이 이어진 적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댈러스 남동쪽의 이 지역에서 목수 일을 하는 존 조 그레이(66)는 1999년 교통법규 위반 단속을 하는 주 경찰과 싸운 끝에 감옥에 갇혔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그는 그 이후 법정에 출두하지 않았다. 법집행 당국은 그의 집 앞까지 찾아왔지만 그의 가족과 친척들까지 총으로 무장한 채 저항하면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법집행 당국은 이 집으로 들어가는 전기와 수도를 차단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레이를 지지하는 반정부 성향의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와서 음식 등 각종 생활용품들을 지원했다.


결국 2014년 앤더슨 카운티의 지방검찰청의 더글러스 로우위 검사는 그레이에 대한 공소를 포기했다. 그는 “그 사람의 승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15년이나 지났고, 누군가는 이 대치를 끝낼 때가 되었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공권력에 대한 미국 극우들의 저항은 텍사스주 등의 경우처럼 미국 연방에서 분리독립하려는 운동과도 닿아있다. 극우의 반정부 활동은 미국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인 셈이다.

시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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