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국보 1호 훈민정음으로 변경 입법 청원
06/01/16현재 대한민국 국보 1호는 숭례문입니다.
하지만 20년 전부터 이 국보 1호를 둔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시민단체가 국보 1호 변경을 국회에 입법 청원했습니다.
사회부 신새롬 기자와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숭례문을 둔 논란이 20년이나 되었다고요?
네. 상징적인 문화재인 '국보 1호' 바로 숭례문인데요.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것은 지난 1962년 12월입니다.
지정번호는 문화재 관리를 위한 일종의 고유번호로 엄밀히 국보 1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문화재를 뜻하는 것은 아닌데요.
하지만 그 상징성은 작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될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20년 전인 1996년에는 현재의 문화재청인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교체하려다 불발됐습니다.
당시 여론조사결과 문화재전문가와 시민들은 국보1호 교체를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년 전과는 달리 최근 여론조사에서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선호하는 쪽이 압도적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계적으로 과학성과 창조성을 인정받는 한글의 창제 의미와 해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더 적합하다고 의견인데요.
지난해 10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되어야 한다고 답한 이들이 64.2%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훈민정음 대신 숭례문이 국보 1호에 적합하다는 것이 20%에 불과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정이 일제의 잔재라는 점입니다.
시민단체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문화재 지정 번호를 그대로 이어받아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정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일각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이 한양으로 입성한 문이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같은 역사적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국보 1호를 뒤흔드는 논거로 자주 거론됐습니다.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 당시 국민들은 '국보 1호'가 힘없이 무너졌다며 애통함을 표했지 않습니까.
화재로 인한 훼손도 국보 논란을 더했겠군요?
맞습니다. 당시 화재로 숭례문은 문루의 상당 부분이 소실됐는데요.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숭례문에 국보 1위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회의 결과, 만장일치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요.
목조건축이 부분적으로 훼손됐다 하더라도 역사적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라는 데 의미를 두었던 건데요.
하지만 복구 과정에서 부패와 부실 공사 의혹도 더해졌죠.
복원과정에서 권위가 더 실추되며 '국보 1호' 자격론 시비를 불리한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아예 국보 1호의 지위를 해제하는 것이 아닌 대체라고 들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요?
우선 지정번호를 해지하는 것은 수백억 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대체안이 있기 때문인데요.
시민단체는 "앞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능가하는 문화재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국보 1호의 자격을 둘러싼 문제는 종식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논란이 시작된 20년 전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은 숭례문을 대신할 국보 1호로 꼽혀왔습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던 지난 2005년 국보 1호 교체 의견에 동의한다며 훈민정음 해례본을 후보 1순위로 꼽았습니다.
다만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사립기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1940년 입수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이러던 차에 경북 상주에서 2008년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굴됐죠.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지만, 최초 발견자인 배익기씨가 내놓지 않고 있는 이 책이 발견 당시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것보다 학술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