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 하일성의 안타까운 말년
09/09/16야구계의 큰 별이었죠. 유명 야구해설가 하일성 씨가 오늘 아침에 숨진 채 발견이 됐습니다. 현재까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경찰에서 1차 육안검사, 1차 검시라고 하는데요. 그 사무실에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사체 상태를 봤을 때 외상 같은 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라고 합니다. 목을 매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이 됐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지금 조금 전에 경찰관이 인터뷰를 했듯이 또 아내한테 발송하지는 않았지만 아내한테 사랑한다, 미안한다라고 하는 유서 형태의 글을 남긴 것. 이런 것 등등으로 추정을 해 볼 때 타살의 혐의는 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그래서 아마 검사 지휘를 받아서 유가족한테 사체 인계하고 아마 장례를 치르는 걸로 정해진 것 같습니다.
고 하일성 씨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외향적이시고 그리고 상당히 이런 선택을 하실 분처럼 정말 아무도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리고 경찰 조사에서도, 작년이었죠. 월수입이 1200만 원 정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런 선택을 했다고 보십니까?
월수입 1200만 원 그것가지고도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니까 과거에 하일성 씨가 건물, 빌딩이 있었는데 그걸 사기를 당해서 날렸다고 합니다.
100억짜리 빌딩이죠.
그때 굉장히 낙담을 했는데 건물은 건물 대로 날리고 그 건물과 관련된 양도세는 또 세금은 본인이 떠안아서 10억 이상의 세금을 떠안아서 그걸 내기 위해서 집도 팔고 차도 팔고 부채를 지고 이런 와중에 굉장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다 보니까 돈을 꾸고 꾼 돈을 못 갚는 과정에 이게 또 사기 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서 피소가 되고 이런 것들이 본인이 평생 쌓아올린 명예가 무너지는 느낌. 그런 느낌 때문에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고. 마지막으로 본인의 억울함을 죽음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정이 됩니다.
조금 전에 말씀하셨다시피 그러니까 돈 부채 문제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사기를 당해서 100억대의 부동산을 날렸다면 상당히 안타까운데. 제가 이런 말씀, 변호사라서 드린 게 아니고 우리가 보통 건강할 때 의사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그리고 건강에 투입한 돈을 아깝게 생각하고. 그러니까 우리나라 지금 법률 문제도 많고 소송도 많고 여러 가지 많은 게 이런 큰 법률 문제를 내가 할 수 있겠지라고 간단하게 생각을 해서 하다 보면 이렇게 이상한 사람의 마수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거래를 하면 몇 십만 원 들더라도 그 법률 전문가한테 자문을 받아서 처리했으면 이렇게 빚에 쪼들리지 않고 건물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래도 행복한 여생을 살 수 있는 분이 그냥 나쁜 마수에 걸려들어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것에 대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 변호사님이야 굉장한 야구 광팬이시고 하니까 특히. 저도 사실 아침에 라디오 진행하면서 이 소식을 전해드릴 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고등학교 은사시고 그래서 저한테는 선생님이십니다. 이분에 대해서 제가 생각할 때는 굉장히 이분이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조금 문제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굉장히 정의파셨어요, 이 선생님이. 그리고 아이들한테 굉장히 엄한 선생님이셨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했을 때 인사를 할 수 있는 선생님이고. 그런 몇 안 되는 선생님이셨었거든요. 그래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하일성 선생님이 처음으로 야구해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뭐를 했냐 하면 그때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어서 야구 기록지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번 타자가 예를 들면 1회 초에 나와서 써드 플라이아웃을 당하고 3회에 나가서 세컨 땅볼 아웃을 당했다는 이것을 기록지, 이 기록지를 우리한테 가르쳐주시면서 시험까지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야구해설을 시작하시면서 야구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셨던 분이고 정말 야구밖에 몰랐다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분인데.
해설이라면 그당시에 저는 74년에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경북고등학교가 사실 고교야구로 그때 아주 전성기를 구가할 때이니까. 야구에 심취하게 됐는데 그게 후에 하일성 씨하고 허구연 씨 두 분이 대표적으로... 지금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 해설가가 워낙 많아서 그런데. 그당시에는 딱 두 분이 거의 대표적이었습니다.
허구연 씨는 야구로 거의 대학교도 가시고 이래서 아주 야구에 대한 전문 지식에 해박하셔서 인기를 얻었고 고 하일성 씨는 아주 구수한 입담으로 야구를 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멘트. 그게 아주 인상 깊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고 하일성 씨하고 이런 분 때문에 야구의 저변화도 많이 됐다. 그러니까 아까 큰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야구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아시안게임도 금메달을 따고 이런 저변이 바로 우리 허구연 씨하고 하일성 씨 두 분의 노력, 이게 결실을 맺은 건데 그중에 한 분이 이렇게 비명은 아니지만 아깝게 가시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일성 씨가 야구를 굉장히 자신의 가장 큰 명예의 근거로 생각을 했었는데. 이분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하숙생활을 하고 혼자 살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 이혼하고 그러면서. 그래서 한때, 어렸을 때 불량청소년 비슷하게 비행클럽에 가입도 하기도 하고 그랬다가 야구를 하면서 이분이 새롭게 태어나서 자신의 인생을 거기에서 찾은 거죠. 그러다 보니까 야구에 매진을 해서 체육교사를 하다가 79년에 해설을 하기 시작해서 그때 굉장히 이웃집 아저씨가 해 주는 편안한 해설. 그때 완전히 표준어는 아니지만 모모모 하드랫도.
이런 말투라든가 야구 몰라요, 이거라든가 역으로 가나요, 이런 식의 여러 가지 유행어를 만들면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설자로서 활동을 했고. 나중에는 또 KBO 사무처장도 했었고 또 올림픽 우리나라 금메달 딸 때 대표팀 단장도 하면서 본인이 그걸 굉장히 명예롭게 생각을 하셨는데. 나중에 빌딩을 잃고 나서 사기 혐의에 자꾸 휘말리면서 본인의 명예가 무너져가니까 그래서 아마 그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됩니다.
이분이 야구 해설을 하게 된 것을 제가 어느 TV 오락 프로에서 나와서 하신 얘기를 들었는데 원래 대학 때까지 야구를 하다가 야구를 그만 두게 돼서 체육고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계셨는데 그날 동양방송에서 야구 해설을 하기로... 환일고등학교에서 체육선생님을 하고 계셨는데 그날 해설을 맡은 사람이 갑자기 급성맹장에 걸려서 대타로 해설을 좀 해달라고 해서 나갔다가 구수한 입담으로 방송에 전격 발탁이 돼서 지속적으로 그때부터 해설을 하게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처럼 자기 인생이 야구처럼 우리 프로야구를 대중화하는 데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활동을 하시다가 인생 9회말 2아웃에 역전 홈런을 날리신 것처럼 열심히 하셨는데 그 끝은 좋지 않아서 프로야구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던 사람, 그것과 함께 자라왔던 저희 세대들에게는 상당히 많은 아쉬움과 아픔을 특히 더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하일성 선생님이 야구 해설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굉장한 애착을 갖고 계셨었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어쨌든 방금 자막에도 나왔습니다마는 고 하일성 씨 같은 경우에 묘비에 우리나라 최초의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야구팀의 단장을 맡았다는 사실을 기록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다른 걸 몰라도 야구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요.
이제는 그분을 보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겠습니다.


